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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교회발 코로나 마녀사냥!

질병 관리청 “사실 교회발 코로나 없었다”,
교회들 ‘멘붕’

한국교회를 초토화한 코로나 19의 기세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까지 1000여 명에 육박했던 일일 확진자가 그나마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은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언제든 다시 확산될 수 있다는 불안은 사그러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교회가 확산의 중심에 있다고 몰고 간다는 것이다. 또한 대다수 교회가 예배 회복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 일부에서 벌어지는 교회 내 확산은 새해 초 들불같이 번져가던 예배 회복 운동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이에 대응하는 한국교회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예배와 국민 안전의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는 합리적 의견이며, 두 번째는 기독교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예배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완전히 다른 듯한 첨예한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이 둘을 놓고,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예배의 절대성이라는 우위를 가늠할 수 없는 서로 다른 가치가 양보 없이 부딪치는 상황은 한국교회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사실 이 둘의 가치는 애초 대립할 필요도 없고, 대립해서도 안 됐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명시한 첫 번째 입장과 신앙의 의무가 담긴 두 번째 입장은 한국교회에 있어 결코 한 가지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이다. 이런 상황에 마치 단 하나의 가치만이 정답인 듯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조장한 것은 애당초 답 없는 내분일 뿐, 이를 통해 한국교회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없다.

중요한 것은 현 코로나 상황에서의 기본적 전제부터 확실히 하자는 것이다. 유독 기독교만을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몰며, 상식 이하의 과도한 제재를 가한 것은 정부다. 정작 한국교회가 맞서 싸워 바로 잡아야 할 것은 잘못된 정부의 정책이다. 앞선 1번과 2번의 가치는 이를 위한 서로 다른 대응 방식일 뿐이다.

정부에 대응하는 첫 번째 방식은 한교총이 중심이 된 정부와의 코로나 협의체를 꼽을 수 있다. 지난해 코로나 초기 교회의 예배와 모임에 대한 일방적 통보를 하는 정부에 반발해 협의체를 구성한 교계 지도자들은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별 교회 예배 모임에 대한 협상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협의체 구성 이후에도 정부의 부당한 제재가 계속된 상황은, 이들에 대한 교계 내부의 불신을 야기하기도 했다. 

교계 지도자들이 정부에 굴복했다는 손가락질도 쏟아져 나왔지만, 실상은 교계가 그들에게 정부를 상대할 힘을 제공치 않은 것이 컸다. 한기총-한교연-한교총 등의 삼단 분열로 구심점을 잃은 한국교회 보수 연합운동이 그야말로 무기력함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올해 역시 한국교회가 하나로 힘을 모으지 않는 한, 지난해와 같은 무기력한 패배는 계속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다.
 
타 여타집단이나 다른 종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대체로 간단하게 축소하여 지나가듯이 가볍게 발표를 하지만 교회에서 확진지가 발생하면 진위는 고사하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쏜살같이 달려든다.

연합뉴스 등 주류 언론마다 가장 기본인 팩트 체크는 고사하고 과학적인 검증은 거치지 않은 채 무조건 교회발 코로나로 도배를 하며 교회가 마치 주범인 것처럼 매도하기에 급급했다. 억지춘향식의 모양새를 만들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국민들에게 형성시켜 왔으며 질병 관리청은 덩달아서 아무런 가이드 라인도 없이 특정교회를 전수 조사하기도 했다. 단 한 번이라도 교회에 나온 적이 있는 사람이 양성 판정이 나올 경우 무조건 해당 교회발 코로나로 마녀사냥 하기에 급급했다.

하루에도 수십, 수 백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발,’‘버스발’ 코로나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교회발 코로나 프레임이 얼마나 악의적인 것인지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전 국민의 화풀이 대상으로, 또한 교회를 핍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타켓을 삼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확진자가 교회에서 감염된 것인지에 대한 주장은 질병 관리청의 추정일 뿐 이렇다 할 의학적, 법적인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특정집단을 전수 조사하면 무증상 양성 환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게 마련” 이라는 소견에 이견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특정 집단을 전수 조사하는 것은 그 가드라인이 명백해야 한다.

교회가 확진자를 만들어 내는 곳이 아니다. 교인들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사회생활 속에서 뜻하지 않게 확진될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교인들도 피해자이다. 당연히 확진 되었는지 모르고 교회에 갔을 뿐이다. 교인들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정부와 언론들이 나서서 마치 전염병을 옮기는 주범으로 몰아가기에 혈안이 되어 왔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모든 책임은 애당초 초기 부실 대응으로 확산을 막지 못한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오히려 교회에 해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 할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교회에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습이다.

과도한 예배 제재에 반발해 스스로 예배 회복을 선언한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 같은 경우는 두 번째 대응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헌법에 명시한 ‘종교의 자유’를 완전히 무시한 정부의 행태에 분개해 이뤄진 작은 동학 혁명이다. 이 역시 종교 이기주의라는 논란도 있지만, 정부가 사회에 요구하는 방역 안전 수준을 충분히 지켜가며, 예배를 드리겠다는 입장은 객관적으로도 충분히 타당했다. 더구나 교회의 머리를 장악하다시피 한 현 정부에 교회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울렸다는 점에서 충분한 성과가 있었다.
 
사실문제는 지금부터 얘기할 세 번째 부류다. 

앞선 두 주장의 공통점은 교회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를 뿐 궁극적 목표는 같다. 하지만 이들 외에 교계에서는 이런 혼란을 틈타 비난을 업으로 삼는 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는 말이 무색하게, 욕설과 막말을 입에 달고 나타난 이들은 국민들이 한국교회를 등 돌리게 하는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기에 연연한다는 사실이다. 각자의 ‘유튜브’를 통해 활동하는 이들은 한국교회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극보수 경쟁을 펼쳐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벌이는 보수의 적통 다툼에 정작 중요한 정치 이념은 상실됐다는 것, 그저 더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만이 영상을 채우고 있다.
 
여기에 교회의 잘못, 자신들의 과실까지 정부의 탄압으로 엮어, 자신을 정당화하는 점은 실로 최악이 아닐 수가 없다. 어떤 정신 빠진 목회자는 예배 중에 코로나에 걸리면 은혜라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는 명백한 종교 이기주의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가치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안위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냐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 이러한 주장은 교회에 대한 국민의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려, 정부와의 협상을 힘들게 하기도 하며, 손 목사와 같은 순수한 예배 저항을 자신들과 같은 저급한 억지로 오해하게끔 하고 있다. 그 어느 쪽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민폐 그 자체이다. 예배를 지키겠다고 국민을 버리는 교회는 결코 존재의 의미가 없다.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며 지켜낸 예배가 과연 얼마나 그 가치가 있는가? 

작금의 한국교회는 교회 자체 내에서 어디, 어느 곳보다 더 방역을 신중히 하며 충분히 지켜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회발 코로나’로 이용, 확대하여 해석하며 대놓고 교회를 탄압하려는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결코 예배와 국민의 안전 사이에서 우위를 따지지 않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출입자 신원 확인은 물론 체온측정과 마스크 착용, 손 소독, 좌석 간 거리 두기가 어느 곳, 어느 집단보다도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

결국 충남 천안의 ‘고무망치’ 사건을 야기시키기도 했다. (고무망치 사건은 천안 안서교회 고태진 목사가 자신의 교회 때문에 코로나 방역에 관해 내건 문구에서 발단이 된 사건이다. 고 목사는 “예배를 드리면 죽인다고 칼이 들어올 때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예배 모임이 칼이 되어 이웃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 모이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이후 해당 문구는 당시 광화문 등지에서 대규모 예배를 강행하던 몇몇 사례들과 비교되어 국민들의 큰 칭송을 받았으며, 반대로 이들 사례는 종교 이기주의로 더 큰 비난을 받았다. 그러던 중 남자 1명, 여자 2명이 해당 교회를 찾아 고 목사의 머리를 ‘고무망치’로 내려찍고, 일부러 고 목사 품에 안기며 성추행 조작을 시도한 것이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당시 이들은 전광훈 목사 지지자들로 알려졌다) 고 목사는 자신을 때린 이들을 용서하며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이제 한국교회는 예배와 국민 모두를 지켜내는 올바른 선택을 도모해야 할 때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하나 됨이 우선이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함이 둘째다. 그러나 교회가 전부라는 이기주의는 이제 완전히 떨쳐 버려야 한다. 헌법에‘종교의 자유’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고 하지만, 기독교가 국교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비기독교인들에게 교회의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일 수도 있다. 선교는 폭력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한 한국교회는 국민에게 영영 외면당할 뿐이다.  

질병 관리청,“사실 교회발 코로나 없었다”… 한국교회 ‘멘붕’

다행히도 지난 2월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가진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 총괄장은 한국교회의“대면 예배를 통한 감염이 사실상 지금까지는 거의 없었다고”고 밝혔다. 이날 중앙사고수습 본부는 개신교, 카톨릭, 불교 등 모든‘종교시설 관련’감염이 지난 1년간 11%에 불과했다고 발표했으며, 실제 대면 예배에서의 감염이 사실상 거의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그동안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행위가 코로나 확진의 발생지인 것처럼‘교회발 코로나’로 확산 시켜 왔던 진원지는 현 정부라는 것이 명백히 밝혀진 셈이다. 결국 정부가 이제 와서 대면 예배를 통한 감염이 없었다고 인정 했다지만 그동안 정부는 한국교회를 상대로 무작위 코로나 마녀사냥을 벌인 셈이다.

1년을 넘게 연합뉴스를 비롯하여 주류 언론들을 다 동원해 동네북 치듯 실컷 두들겨 놓고 이제 와서는 사과 한마디 없이 발표로 “땡‘하면 그만인가 보다. 앞으로 있을 서울시장 선거 등을 우려해서 한국교회의 민심을 돌아보는 척하는 것인지, 선거가 끝난 다음에 또 어떻게 돌변할 것인지 당췌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 한국교회에는 중, 대형교회와 자칭 내노라하는 목사들이 즐비한데 용기 있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아쉬울 뿐이다. 그러니 이렇게 두들겨 맞아도 싸다고 해야 할지.


■ 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