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삶 시대의 징조

[페미니즘이란?] 페미니즘의 미혹

페미니즘의 기원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 향상 및 남녀 불평등 타파를 논의하는 이론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추구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반대한다. 인류 역사에 거쳐 여성들이 여러 면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억압된 삶을 살았던 부분이 있었던 만큼 어느 정도는 필요한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남녀 갈등은 심해지고 있다. 남혐, 여혐, 한남충 등 남녀갈등을 부추기는 신조어들이 유행어처럼 퍼지고 있고 모든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찍히기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최근 한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잠재적 가해자”인 모든 남학생들이 교실 앞에 서서 “잠재적 피해자”인 모든 여학생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강요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왔던 여성을 배려한다는 취지로 수많은 여성 편향적 제도와 법들이 제정되고 있는데 이는 결국 남녀 불평등이라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의 무게를 다른 한쪽으로 쏠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남성 우월주의 타파, 가부장제 타파를 위한 해결책이 결국 여성 우월주의와 역차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모순된 사회 현상과 함께 결혼과 출산율의 급감, 이혼 및 비혼 가구의 증가 등 가정 해체 현상은 이 사회질서의 근간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이런 다층적인 사회 문제들을 가로지르는 공통분모는 다름 아닌 남녀 갈등의 악화이며, 이 갈등구도의 저변에는 페미니즘이 자리 잡고 있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 향상 및 남녀 불평등 타파를 논의하는 이론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추구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반대한다. 인류 역사에 거쳐 여성들이 여러 면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억압된 삶을 살았던 부분이 있었던 만큼 어느 정도는 필요한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진행되었던 초기 페미니즘은 여성의 사회적, 법적 권리를 위해 싸웠으며 피나는 노력 끝에 여성들은 비로소 재산권, 이혼권, 양육권, 참정권 등 마땅히 누려야 할 남성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쟁취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페미니즘을 1세대 혹은 1물결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페미니즘은 초기 여성운동과는 확실히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196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2세대(2물결) 페미니즘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인데 이 시기의 페미니즘을 급진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아무리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구조적인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칼 마르크스의 계급 갈등을 남녀갈등에 적용시키며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체제 자체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급진 페미니즘에서 급진은 영어로 “radical”이라고 표시한다. “radi”라는 어근은 “뿌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여기에서 “근본적인,” 그리고 “급진적인”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파생된다. 즉, 남녀 불평등의 “근원”이 가부장제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가부장제라는 근원을 “뿌리째 뽑아버리고자” 했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정립의 뿌리 역할을 한 여성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그녀의 저서 『제2의 성』(1949)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는 명제를 남겼다. 그녀에 의하면 여성은 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정체성이 없으며 남성 중심적인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은 진정 여성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며 그런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독립된 자아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을 거부하고 자유연애를 즐겼으며 낙태를 두 번 한 경험이 있는데 실제 많은 여성들에게 낙태와 이혼을 조장하며 가정에서 탈출하라고 촉구했다.

보부아르의 정신을 이어받아 미국에서 60년대부터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국 페미니즘 운동에 불을 지핀 베티 프리단은 중산층 가정주부들의 좌절과 불만을 대변하는 책인 『여성의 신비』 (1963)에서 가정을 “안락한 포로수용소”라고 명명하며 여성들을 가정에서 뛰쳐나오도록 조장했다.

또한 북미여성단체(NOW)를 설립하여 여성운동을 전국적으로 퍼트렸는데 이 단체는 현재까지도 가장 큰 페미니스트 단체이다. 세 번째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인 케이트 밀렛은 『성의 정치학』(1969)에서 남녀관계를 계급관계로 보았고 남성 지배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에 대한 방안으로 여성의 성적 자유와 해방을 외쳤고 자신의 이론을 레즈비언적 삶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의 변증법』(1970)의 저자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임신은 야만적” 행위라고 비난할 뿐 아니라 태아를 기생충에 비유하기까지 하면서 여성들에게 임신과 출산의 압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쳤다.

현숙경
Texas A&M University 석사, 박사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실용영어학과 교수
바른인권여성연구소장


페미니즘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불평등과 갈등의 원인이 타인(남성)에게 있거나 구조적인 문제(가부장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녀를 막론하고 나의 죄 된 본성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갈 2:20) 나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60년대 급진적인 여성해방운동이 가장 먼저 강타한 것은 무엇보다 가정이었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극단적인 주장은 여성과 남성, 결혼과 성, 성과 임신, 그리고 임신과 출산의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조합을 임의로 끊어놓았다.

그로 인해 여성과 남성의 분열은 결국 이혼과 비혼의 형태로 드러났고 결혼과 성의 분열은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눌 수 있었던 성을 결혼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행위로 변질시켜 버렸다. 성과 임신의 분열을 가능케 하는 도구로서 피임이 보편화됨으로써 무분별한 성관계가 더욱 조장되었다.
또한, 임신과 출산의 분열은 낙태를 통해서 가능케 되었다.

실제 미국에서 1960대에는 1000커플 중 2.2 커플이 이혼을 했으나, 1969년 무책 이혼법의 통과를 기점으로 이혼이 급증하여 1980년대 1000커플당 다섯 커플이 이혼하였는데 이는 60년대에 비해 두 배가량 증가한 수치이다. 또한, 혼인율은 1970년대 1000명 중 10.6명대에서 2018년 6.5명으로 감소했고 출산율은 1957년 3.7명대에서 80년대에 1.84명대로 하락했으며 비혼과 동거의 증가와 함께 미혼모가 급증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또한 미혼모의 증가는 사회문제로 직결되었는데 연구 결과 미혼모에 의해 길러진 아이들이 청소년 살인의 72%, 강간의 60%, 십대 출산의 70%, 자살의 70%, 고등학교 중퇴의 70%를 차지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이 이외에도 미혼모의 자녀들은 낮은 자존감, 무단결석, 갱단 가입, 약물 남용, 노숙자(출가 아동의 90%는 아버지가 없음), 40배 더 높은 성적 학대의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

결국 반성경적인 페미니즘의 여성해방 운동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전면 위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세상은 낙태, 피임, 이혼, 비혼이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우리를 미혹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하자.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권리와 자유가 아니라 죄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세상을 분별하지 못하여 미혹에 빠진 결과는 참담하다. 한 예로, 우리나라의 인구 절벽이 지속될 것을 전망한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한국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최초 국가가 될 것이다”라는 무서운 예측을 내놓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첫 지상명령에 불순종한 대가인 것이다.

죄 된 본성을 가진 불완전한 남녀가 만나 만들어진 가정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 질서 안에서 우리는 사랑과 책임감으로 나 자신을 내려놓고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맞춰나가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처럼 불완전한 가정 내에서의 갈등과 문제점을 무조건 계급적인 문제로, 혹은 성차별적인 문제로 접근해서 그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미명 하에 기본 질서의 근원을 파괴하는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는 남녀의 갈등과 불평등의 해결책을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불평등과 갈등의 원인이 타인(남성)에게 있거나 구조적인 문제(가부장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녀를 막론하고 나의 죄 된 본성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갈 2:20) 나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남녀 간에 진정한 회복과 화합이 가능하며 가정이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회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역행하고 있음을 정확히 분별하고 주님이 주신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인 가정을 최선을 다해 유지하고 다음 세대에 생명의 고귀함과 가정의 신성함을 잘 일깨워 줘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을 삶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현숙경
Texas A&M University 석사, 박사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실용영어학과 교수
바른인권여성연구소장


페미니즘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

많은 교회가 낙태가 죄라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선포하지 못함으로 개신교 내의 낙태경험이 모든 종교보다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페미니즘과 타협한 결과이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골로새서 3:18)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베드로전서 3:1)

아내들에게 주시는 이러한 말씀들은 특히 전도할 때 여성들에게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복종”이라니!!!

그럼에도 하나님의 진리는 타협이 없다. 세상에서 배워온 페미니즘과의 괴리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된다. 세상의 페미니즘 역시 절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기독교를 향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 누가 우리에게 짐을 부과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에게 짐을 부과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젠더폭력적 사회타파를 목표로 형성된 여성혐오와 반여성혐오 같은 대립적 정서는 급기야 교회를 “성찰하고 극복되어야 할 남성문명이자 가부장제”로, “남초-동성사회”의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2016.8. 『역사비평』, 천정환,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메갈리아 논쟁까지」를 참조함)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성 주류화와 성인지적 시각으로 성경을 바라보자니, 절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변명이나 주석이 달려야 하고, 하나님이 주신 의무 규정에 대해서 개인의 선택권을 부여하게 되는 기괴한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예가 이미 “낙태”에 관한 문제에서 드러났다. 페미니즘의 입장을 수용한 신학자들은 사랑의 하나님이 하나님은 준비가 안 된 여성에게 그렇게까지 고통스럽게 출산과 양육의 짐을 감당하게 하실 리가 없다며, 어쩔 수 없이 낙태하는 우리를 용서하실 것이다. 라는 말도 안 되는 포장을 들이댄다.

낙태는 여성의 생존으로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낙태죄는 사라져야 한다.”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반대로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계획을 가지고 창조하신 한 생명의 호흡을 인간의 선택으로 빼앗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또한, 많은 교회가 낙태가 죄라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선포하지 못함으로 개신교 내의 낙태경험이 모든 종교보다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페미니즘과 타협한 결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는 타협이 없다. 우리 눈에 보기에 선하게 보여도 절대 선이신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여성들에 대한 명령 앞뒤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남성에게도 또한 사랑을 명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에베소서 5:25),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로새서 3:19),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3:7). 성경은 아내들에게만, 여성들에게만 의무를 부과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남자에게 여자를 보호하고 사랑할 의무,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그 자신을 주시기까지 하셨던 그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는 무거운 명령을 주셨다. 일부 남성들이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 여성들이 직접 나서서 남성들을 정죄와 판단함으로 이것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연취현
변호사 연취현 법률사무소
바른인권여성연합 전문위원장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사무총장
복음법률가회 운영위원


페미니즘이 직장에 미치는 영향

남성에게는 남성의 고유한 특성이 여성에게는 또 그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러면서도 또 개별존재는 그 자체로 다 각자의 고유성이 부여되어 있는 우리 각자가 서로 가진 장점을 가진 존재임을 이해하고, 서로의 장점을 지지하고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돕고 배려하면서 최고의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하고 조화로운 직장생활이 될 것이다.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완전한 평등을 꿈꾼다. 실제로 많은 분야에서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 혹은 높은 지위에서 일하며 좋은 성과를 내는 일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이 내신 여성성과 남성성, 각 성별의 다른 특성을 부정할 수 없음에서 오는 남초, 여초 직종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 부분을 해결해내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교사, 특히 돌봄교사나 초등교사의 직종이나 간호사와 같은 직종에는 여성들의 비율이 매우 높다. 반면, 군인, 경찰이나 건설업종과 같이 육체적인 힘을 요하는 직종에 남성들의 비율이 현저히 높다.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면서 금기로 여겨졌던 많은 직종에 여성들이 진입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예를들어 아직도 숙직이 필요한 직종이나 힘이 필요한 직업에서는 남성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가 남녀평등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아파트 경비원이 대부분 남성인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나? 또한 남성과 여성이 완전히 평등하다는 시각에서 볼 때, 도대체 왜 교직에 남교사가 품귀에 가까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사회적 우려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답변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페미니즘적 시각에서는 어느 시대가 되었든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이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이 볼 때 그럴듯한 직종에 그럴듯한 일에 대한 문턱이 높은 것은 유리천장 때문이며, 타파의 대상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직군에서 발생하는 남초현상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

직장에서 만연한 페미니즘은 같은 문제를 발생시킨다. 여성동료에게 차 타주는 것을 부탁하는 것은 성차별이지만, 항상 차를 타야하는 남성직원이 이것을 문제삼으면, 아무에게도 피해자로 인정받기 어렵다. 남성들 사이에서는 주변머리 없는 사람이고, 여성들 사이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사람일테니까. 페미니즘은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구조로 인해 젠더폭력의 철저한 피해자인 여성 집단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념이기 때문이다.

생수기의 물통을 들어 올리는 것은 남자에게도 편한 일은 아닌데도 정수기 물통은 남자들이 갈아야 하고, 커피는 각자 타야만 한다는 기준의 이중성을 지적하면 이것을 상호 배려의 문제로 해결하지 않고, 물통형 생수기를 몰퉁이 필요없는 정수기로 바꾸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들면 도저히 이 다툼을 종식시킬 방법이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서로 다름을 가지고 다투는 것으로는 다툼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이 다툼의 끝은 서로 생각을 맞추려고 할 때에만 끝이 난다. 결국 젠더갈등이라고 이름 붙여진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갈등상황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이외에는 답이 없다.

남성에게는 남성의 고유한 특성이 여성에게는 또 그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러면서도 또 개별존재는 그 자체로 다 각자의 고유성이 부여되어 있는 우리 각자가 서로 가진 장점을 가진 존재임을 이해하고, 서로의 장점을 지지하고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돕고 배려하면서 최고의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하고 조화로운 직장생활이 될 것이다.

연취현
변호사 연취현 법률사무소
바른인권여성연합 전문위원장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사무총장
복음법률가회 운영위원


페미니즘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

한국의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특히 남성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며 남성비하를 일삼는다. 한국 남성을 한남충-한남유충이라 칭하는 윤지선의 논문에서도 보듯이 남성을 인격체가 아닌 벌레 같은(벌레만도 못한) 부류로 취급한다.

페미니즘이 핫하다. 대표적인 페미니즘 소설인 「82년생 김지영」이 2016년 서점가를 흔들었다. 이 책에는 ‘한국 여자의 인생 현장 보고서’라는 광고문구가 붙었다. 딸을 둔 서른네 살 김지영 씨 내면에 다른 여성들이 빙의해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 했던 부당한 대우와 시선들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여성들에게 많이 읽혔지만, 이 소설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일부 호평도 있었지만, 여성의 삶을 단순한 성차별적 관념으로만 보는 페미니즘이라는 시각 자체가 고루하며 남녀의 대립을 증폭시킨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미 서구에서는 한물간 유행이 가장 최신인 것처럼 서점가에는 페미니즘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2015년 즈음부터 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던 급진적 페미니즘이 우리나라에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정치적, 제도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급진 페미니즘 사상에 매몰된 일부 여성들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대중을 세뇌, 선동해왔기 때문이다.

60년대 미국의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사회 갈등의 원인을 가부장제에 있다고 보았다. 가부장제란 가정에서 남성이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가족을 통솔하며,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체제를 의미한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인류의 역사가 이렇게 남성지배적 사회로 존속해 왔으며, 여성은 종속자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억압과 착취를 당해왔다고 한다. 그들은 여성이 결혼, 임신과 출산, 양육을 통해 남성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가족제도로 인해 가부장적 사회가 탄탄히 유지된다고 본다.

따라서 억압자인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사회로부터 여성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은 성적 자유와 혼인(비혼, 이혼)의 자유, 출산(피임, 낙태)의 자유를 자신들의 권리로 주장한다.‘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의 구호가 그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급진 페미니즘은 궁극적으로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해체를 목표로 삼았다.

한국의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특히 남성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며 남성비하를 일삼는다. 한국 남성을 한남충-한남유충이라 칭하는 윤지선의 논문에서도 보듯이 남성을 인격체가 아닌 벌레 같은(벌레만도 못한) 부류로 취급한다.

그들은 비연애, 비성관계, 비혼, 비출산이라는 4비(非)를 새로운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로 규정한다. 이 속에 들어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 남성과의 모든 관계 맺기를 부정하며, 자녀를 거부한다.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분리시키고 연애와 결혼을 거부하게 한다. 이미 결혼관계 안에 있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분열시킨다. 딸들이 아빠에 대해서 적대감을 갖도록 만든다.

미국에서 1969년 무책 이혼법을 통과시킨 이후에 이혼율이 급증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도 급증했다.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사회 2019’에 따르면 한국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율)은 2016년 기준 2.1명으로 1991년 1.1명보다 2배 치솟았으며 OECD 평균인 1.9명을 넘었다.

우리나라 이혼율은 OECD 회원국 중 9위, 아시아 1위다. 페미니즘은 독박육아, 경력단절과 같은 단어들을 만들어내서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피해자 의식을 심어줌으로써 남편에게 불만을 갖게 하고 자녀를 귀찮게 여기게 한다. 자유로운 낙태를 원하고 아이는 낳지 않는다.

성(性)을 마음대로 누릴 권리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자녀를 갖지 않으려는 페미니즘적 사고방식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부부라는 관계 안에서 성을 나누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인데, 이 자연스러운 과정을 페미니즘은 의도적으로 다 깨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위해 배필을 지으셨고, 사람이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 즉 남성과 여성은 부부가 되어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다.

건강한 부부 관계를 방해하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일을 기피하게 만들며 가정을 이루는 일 자체를 거부하게 만드는 것은 페미니즘의 가장 큰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페미니즘이라는 광풍이 불어왔다. 이 폭풍 속에서도 날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성령에 의지하여 진리이신 말씀에만 주파수를 맞추어야 하는 영적 분별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전혜성
바른인권여성연합 사무총장
행동하는프로라이프 공동대표
행복한다음세대연구소 대표
happyngi@naver.com


페미니즘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

페미니즘은 청소년들에게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라는 잘못된 정체성을 심어준다. 서로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버린다. 남성은 남성들끼리, 여성은 여성들끼리 서로를 혐오하며 비하하고 조롱하게 만든다. 이러한 대립적 성별 인식은 우리 청소년들의 성가치관과 결혼관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결혼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만든다.

2021년 5월 5일 초등교사 집단으로 추정되는 학생 페미니즘 의식화교육 비밀 웹사이트가 발각되어 온 국민들이 충격에 빠졌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수사 의뢰를 한 상태이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에 가까운 페미니즘 세뇌교육의 정황이 포착된 전대미문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교육부, 교육청, 많은 교원단체와 교사노조들은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수사상황과는 별개로 이미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노골적인 페미니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은 2017년부터 ‘성평등하고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 조성’을 내세워 주도적으로 학생들의 성교육에 개입하였고, 2018년 1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일어나자, 언론과 여성단체들이 나서서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마침내 2018년 2월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교육과가 <모든 학생 연간 15시간 성교육(성폭력예방교육 3시간 포함) 의무 실시>를 선도적으로 실시하였고 전국 시도 교육청이 이를 뒤따르면서 전국의 초중고에서 성평등, (디지털) 성폭력예방 등의 이름으로 사실상 페미니즘 교육이 의무적으로 실시되었다.

페미니즘 교육은 학생들의 일상 속에 있는 성차별적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학교 내 성폭력을 신고하는 신고센터를 설치하여 남녀 학생들 간의 갈등을 부추기며 서로 신고하게 만드는 살벌한 학교 문화를 조장하였다. 이와 동시에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명목으로 성관계와 피임, 낙태를 권리로 인식하게 하는 교육으로 청소년들의 성적 방종을 부추긴다.

최근 한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잠재적 가해자”인 모든 남학생들이 교실 앞에 서서 “잠재적 피해자”인 모든 여학생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강요당하는 일이 발생해서 충격을 주었다. 또 초등학교 4학년짜리 딸이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받고 와서 아빠에게 “그동안 아빠가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해주지 않았던 건, 남자인 아빠가 여자인 자신을 차별한 것”이라며 하루 아침에 아빠를 적대시하는 모습에 피눈물을 흘렸다는 한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접했다.

페미니즘은 청소년들에게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라는 잘못된 정체성을 심어준다. 서로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버린다. 남성은 남성들끼리, 여성은 여성들끼리 서로를 혐오하며 비하하고 조롱하게 만든다. 이러한 대립적 성별 인식은 우리 청소년들의 성 가치관과 결혼관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결혼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만든다.

자기 권리라며 성적 방종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성별의 차이를 차별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페미니즘 교육은 우리 청소년들에게서 자신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된 고유한 성별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빼앗아간다.

남성은 남성으로서, 여성은 여성으로서 생물학적으로 부여된 특질들로 인해 나타나는 차이는 서로의 장점과 단점이 되어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져 있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자신이 생래적으로 받은 성별에 대한 가치를 훼손하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의 성별을 바꾸고자 하는 그릇된 열망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주기까지 한다.

왜곡된 페미니즘 교육으로 인해 우리의 다음세대가 자신의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남녀관계를 대립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점점 결혼을 기피하고 가정을 이루기를 꺼려하고 있다. 남녀의 정체성과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가치관 형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교회는 크리스천 청소년들이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는 일에 힘쓰도록 훈련하여 바른 진리 위에 서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의 왜곡된 가치관에 다음 세대를 세상에 빼앗기지 않고 믿음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전혜성
바른인권여성연합 사무총장
행동하는프로라이프 공동대표
행복한다음세대연구소 대표
happyngi@naver.com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죄의 본성을 가진 불완전한 남녀가 만나 만들어진 가정과 교회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개인이 죄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은혜는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킨다. 여성과 남성의 문제는 복음의 진리 안에서만 온전히 해결되고 회복될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남성과의 생물학적인 차이로 인해 많은 차별과 억압을 받아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성들의 힘겨운 투쟁의 역사가 필요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일들은 21세기인 현재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여전히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수년 전부터 양성평등에 있어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유엔개발계획(UNDP) 발표한 세계 성평등 지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아시아 1위의 성 평등 국가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있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현재의 국가를 가부장제 기반의 젠더 폭력 사회로 단정 짓고 가부장제를 완전히 해체하기 위한, 사실상 국가를 해체하기 위해서 성 평등 관점의 담론들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연애와 결혼, 출산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고, 여성의 권리를 극대화하는 제도들로 인해 역으로 남성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의 원인은 가부장제로부터의 여성 해방을 추구하는 급진적 페미니즘이 정치 제도권 안에 진입하여 국가의 법과 정책을 좌우하는데 있다.

페미니즘 관점의 법과 정책들이 난무한 현실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교회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여성들에게 계속해서 더 많은 권리와 권한을 갖게 하는 페미니즘은 교묘하게 우리의 마음에 침투한다. 우리는 페미니즘을 사탄의 미혹이라고 본다.

우리 교회들에게 주님께서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언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우리가 세상의 흐름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여성 인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 인권도 타인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제한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타고난 저마다의 권리를 가진다는 천부인권(天賦人權)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존귀하게 지으셨다는 진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페미니즘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페미니즘의 뿌리가 반성경적 사상인 막시즘에 기반 한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가부장제는 마르크스의 계급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붕괴시켜 노동자가 지배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시키는 것이 기독교임을 꿰뚫어 본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주장하며 공산혁명을 통해서 기독교 교회를 말살하였다. 막시즘을 기반으로 하는 페미니즘은 계급갈등의 불평등을 여성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치마 입은 막시즘이다. 립스틱을 바른 막시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페미니즘과 막시즘은 본질적으로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영적인 공격이다.

죄의 본성을 가진 불완전한 남녀가 만나 만들어진 가정과 교회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개인이 죄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은혜는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킨다. 여성과 남성의 문제는 복음의 진리 안에서만 온전히 해결되고 회복될 수 있다. 불평등과 갈등의 원인이 타인(남성)에게 있거나 구조적인 문제(가부장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녀를 막론하고 우리 각자의 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답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안에 있다. 진리를 붙들어야 한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거듭난 삶, 성령께서 이끄시는 성령의 삶을 살 때 남녀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남편들에게는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다. 아내들에게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신다. 목숨을 내어주는 남편의 사랑, 그 남편에게 온전히 맡기는 아내의 순종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습이다.

사단은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오늘도 더 교묘하고 더 집요하게 우리를 미혹하고 공격한다. 우리는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고 있음을 명확히 분별하고,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정성껏 가꾸어 다음 세대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신앙을 물려주는 고귀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현숙경
Texas A&M University 석사, 박사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실용영어학과 교수
바른인권여성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