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기고

[함정호 목사의 쉴만한 물가] 하나님께 복 받을 믿음 (요한복음 6장 1절~15절)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란, 전능하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이다.
이 생활은 자연원리나 합리성이나 인간의 계산을 초월하여 삶을 통해 나타나고,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며 사는 삶이 코람데오의 자세이다.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는 먼저 인간이 믿음의 행위를 보일 때 이루어진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많이 회자되는 부분인 오병이어 사건이다. 다섯 개의 빵과 두개의 물고기를, 예수님께서 남자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이다. 남자 오천명이니 딸린 식솔까지 생각하면 적게는 만명, 많게는 이만명가량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 먹이신 후에 부스러기가 열 두 광주리에 담겼으니, 부족함 없이 넉넉히 베푸신 사건이다.

아이의 것이었던 오병이어를 자기의 주권, 소유권, 사용권을 온전히 예수님께 이양하고 예수님 손에 올려놓을 때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니 기적이 일어났다. 오늘도 내 몸, 내 소유의 주권과 소유권과 사용권이 주께 있음을 믿고 주님의 것을 맡은 선한 주님의 청지기가 될 때 주님은 축복하신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하지 않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주님을 이용하니까 주님은 축복치 않으신다.

주님을 항상 자기 몸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에 의해 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에서 복을 누리고 살 수 있다.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 하셨다(마 16:24).

예수님은 뒤에 말씀하신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죽은 자를 살리시거나, 병든 자를 고치시거나,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예수께서 보이신 모든 이적은 결국 예수가 바로 생명의 근원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사건들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세상의 물질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게 통찰해야 한다. 그것이 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다.

기적의 축복의 ‘씨’는 오병이어를 주님께 드린 어린아이의 믿음이었다.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쓰심에 합당하도록 예비하는 자와 그의 하는 일과, 그의 소유를 축복하신다.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하는 동기가 세상에 오신 예수님 같이 선한 목적을 가지고 해야 한다. 기독교는 준비하는 도이다.

빌립을 포함한 열 두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그가 다른 위격을 가지신 동일한 하나님임을 실감하지 못했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개개인마다 믿는 경로나 동기가 다르다. 하지만 믿음의 본질과 목적을 바로 알고,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고 살아가다 보면, 주님이 허락하신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다.

그 열매를 통해 예수가 하나님이시며, 진정 생명의 근원이요,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확신이 점점 강해진다. 지금 나의 신앙이 부족하게 느껴지면 더욱 정진해야 한다. 만 가지 말씀과 갖가지 이적을 듣고 보았음에도 예수의 실체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를 왕으로 세우려는 군중을 피해,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 위해 산으로 가신다.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란, 전능하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이다. 이 생활은 자연원리나 합리성이나 인간의 계산을 초월하여 삶을 통해 나타나고,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며 사는 삶이 코람데오의 자세이다.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는 먼저 인간이 믿음의 행위를 보일 때 이루어진다.

이 갈릴리 바다 인근에서 예수께서는 참으로 많은 일을 행하셨다. 이 바다는 예수를 바로 아는 자들에게는 갈릴리 바다요, 그렇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황제의 이름인 디베랴 바다가 될 것이다. 나는 과연 말씀과 신앙생활과 허락한 모든 것들을 주를 위해 쓰는 참된 어부인지, 혹은 나의 욕망을 위해 쓰려는 군중들인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스스로를 점검하고 고쳐나가는 삶이되기를 기원한다.

 

 

■ 함정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