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오피니언

[연재] 전인구원신학과 전인교육목회①

이제는 대형교회를 꿈꾸는 목회가 아니라,
작지만 오직 교회의 질적인 성장을 모색하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을 기대하면서
이 내용을 제시하게 되었다.

서언

특히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전인구원’이어야 하며, 그러한 기독교신앙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혜에 전인격적으로 반응해야 할 신앙윤리적인 책임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코메니우연구소가 2017년 8월에 개최한 제2회 목회자컨퍼런스는 “전인구원의 전인교육목회 이렇게 하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이 주제를 생각하게 된 동기는 현재 한국교회, 특히 한국의 보수교회들의 구원신앙에 대한 이해가 인간성 변화와 인격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구원신학을 바로 잡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특히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전인구원’이어야 하며, 그러한 기독교신앙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혜에 전인격적으로 반응해야 할 신앙윤리적인 책임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강연자는 ‘전인구원신학과 전인교육목회’를 컨퍼런스 전체의 중심주제로 삼았고, ‘전인구원’이란 어떤 것인지? 그것이 왜 필요하며, 왜 중요한 것인지? 신학적으로 먼저 밝히고, 그러한 구원이해를 분명히 일깨우고, 모든 기독인들이 산 신앙으로 응답되게 하려면, 전인교육목회의 필요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이러한 주제의 연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간 많은 한국교회의 개혁을 말해 왔지만, 실제적으로 개혁되어야 할 실천신학의 주제로서, 전통적인 목회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역시 교회의 양적 성장을 지향해 온 목회방식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이제는 대형교회를 꿈꾸는 목회가 아니라, 작지만 오직 교회의 질적인 성장을 모색하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을 기대하면서 이 내용을 제시하게 되었다.

전인구원(全人救援)신학의 올바른 이해

그간 한국보수교회의 구원관은 개인구원을 중심으로, 특히 예수 믿으면 대체로 영혼이 구원받게 된다는 ‘영혼구원’을 가르쳐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원이해는 신학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본다. 어떤 문제인가? 기독교구원은 과연 육체와는 관계없는 영혼만의 구원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결합에 의한 전인격적인 존재가 아닌가? 오히려 인간은 영혼과 육체를 가진 몸이 아닌가? 그래서 기독교의 구원은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육체도 함께 구원받는 온전한 몸의 구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구원만 강조하고 육체와 연결된 온전한 몸의 구원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않는다면,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구원에 빠지게 되며, 기독교신앙은 믿음과 행동(책임)이 분리되며, 기독인의 언행불일치 문제를 겪게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초대교회의 영지주의의 문제처럼, 한국교회의 신앙은 이원론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지금 한국교회는 믿기는 잘 하지만, 그 믿음에 상응하는 인간의 윤리적인 책임과 행동이 외면되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베드로서전1:9절에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는 말씀이 있다. 또 성경에는 인간의 몸이 구성하는 요소를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이분설(창 2:7, 시 104,29, 전 12:7)이 있으며, 영, 혼, 육으로 구분하는 3분설(살전5:23)도 있다. 그러나 이분설이든, 삼분설이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며, 분명한 것은 인간이 영혼과 육체를 한 몸에 지닌 전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이며, 그래서 ‘영혼구원’이란 개념보다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전체의 의미를 담아낸 전인의 구원개념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전인의 구원을 위하여 오신 메시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예수만 믿으면 영혼이 구원받으며, 그것도 미래에 약속된 천국(하나님나라)만을 생각하게 되면, 땅에서 경험되어야 하는 구원의 현재적인 의미는 외면당하거나 사라지게 되는 위험을 안게 된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구원관은 유감스럽게도 영혼구원이 인간의 현세적인 삶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예수를 믿는 일이 세상에서 인간적인 삶을 지속해야 하는 것과는 어떤 관계에 있으며, 기독교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깨우쳐주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한다. 그처럼 수많은 성경공부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신앙교육은 올바른 진리 이해에 충실하지 못했던 문제가 오늘날 드러나고 있는 모습이다.

생각하면, 성경적으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때는 언제인가? 이 땅에서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이다. 그래서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며, 영혼은 그 어디엔가 하나님의 영역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죽음의 때 외는 현세의 삶에서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즉 내세의 삶에서 결코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지 않으며, 온전한 결합에 의한 전인구원이며, 육체의 부활과 함께 영생을 성경은 일관되게 증언하지 않는가(고전15:20~24;살전4:13~18;계20:5~6)? 생각하면, 기독교구원을 영혼구원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 미래의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의 기다림에만 집중하는 가르침은 아마도 매우 어거스틴적인 이원론적 세계관에 근거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어거스틴은 그의 “신의 도시”와“고백록”에서 지나치게 현세와 영생을 이원화시켜 놓고 있으며 교회의 승리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원론적인 영향이 영혼구원만 강조하게 된 원인이 아닌가 싶고, 플라톤의 영혼불멸설에 지나치게 의존된 성경해석이 아닌가 쉽기도 하다. 어쨌든 기독교구원은 개개인의 영혼만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구원이며, 결코 분리되지 아니한 영혼과 육체의 온전한 구원이며, 전인격적으로 응답해야 할 하나님의 구원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영혼과 육체를 포함한 전인격적인 구원을 우리는‘전인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전인구원은 지극히 인간의 인간성의 본질인 인격과 성품과도 직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구원은 타락한 인간의 하나님 형상(Imago Dei)이 회복되는 일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론(Imago Dei)은 실제로 인간이 영과 육이 결합된 몸을 가진 전체적인 존재요, 인격 전체적인 존재임을 이해하게 하는 열쇠이다. 그래서 인간의 타락은 타락 이전의 인간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본래의 의’(Iustitia originalis)가 상실된 것이며, 하나님 형상의 본질적인 기능과 역할의 상실로 보는 것이 현대적인 개혁신학의 이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개념은 오히려 창조주하나님과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관계개념’으로 이해하며, 타락은 그 관계의 단절이며, 대화와 의사소통의 단절을 뜻하기도 한다(김균진, 기독교신학).

중요한 것은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 회복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 형상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오신 메시아인 것이다(골1:15, 고후4:4, 히1:3). 그러므로 전인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에게 상실된 그 형상이 회복되는 기회 획득의 의미이며, 전인격을 동반하여 그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가 적용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존재)으로 재창조의 은혜를 입었음을 뜻하게 되는 것이다(고후5:17). 그것이 기독교구원론에서 중생과 거듭남과 회심과 믿음을 말하는 이유인 것이다(마3:2, 요3:5, 막1:15). 생각하면, 기독교의 구원은 개개인이 중생과 회심과 믿음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기독인(예수의 제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인생(삶)을 사는 시작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일과 관련하여 성품의 변화, 인간성의 변화가 끊임없이 뒤따라야 하는 성화의 사건과도 깊이 연관된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칭의와 성화 사이에 나타나야 할 그리스도를 향한 지속적인 움직임과 활동으로 여겨진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과정을 그리스도의 형상이 온전히 인간 내면에서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간성으로 형성되고 닮기까지, ‘해산하는 고통의 수고’라고 일러주기도 하였다(롬8:29-30,갈4:19). 그리고 기독교구원은 전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살아 움직이며 활동하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삶(신앙생활)이며, 특히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서 시작하여, 믿음대로 행하는 순종의 삶을 말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전인구원은 모든 신자들이 인격적인 신앙 성장과 성숙을 지향하는 신앙교육적인 과제임을 깨닫게 된다(엡4:11-16). 그리고 교회 성장은 결코 수의 많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그 성숙한 예수 제자의 인격적인 모습에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여기서 기독교의 전인구원신앙과 교육목회(가르침과 돌봄의 사역)는 서로 필연적인 관계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면, 현대신학은 기독교구원이 영혼과 육체의 전인격적인 인간의 삶 전체의 구원을 말하며, 무엇보다도 만물을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우주 전체 구원과 연결된 것임을 또한 말해준다. 특히 전인구원을 전제하여, 사회구원과 자연생태계구원의 윤리적인 책임을 포함한 창조세계 전체의 구원이 기독교복음이 말하는 총체적인 구원인 것이다(김균진, 기독교신학 3권). 현대 보수적인 개혁신학도 기독교구원은 창조세계 전체에 관계된 총체적인 복음의 구원으로, 믿음과 회심도 총체적으로 요구되는 전인구원임을 말하고 있다(김광열, 신학지남, 72권 3, 129-156).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개인과 하나님, 개인과 사회, 개인과 자연까지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창조세계의 구원임을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다(창1:28, 눅10:25-37, 롬8:19-23). 그것은 역시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는 복음전도와도 맞물린 일이며,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모든 기독인들이 세상 가운데서 복음의 빛을 비추는 일과도 맞물린 것이다(마5:13-16).

이러한 전인구원은 그간 기독론적인 관점에서만 인간구원을 이해했던 전통적인 구원론을 뛰어넘어, 이제는 창조신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통전적인구원’(Holistic Sal- vation)이 분명하다. 그 때문에 기독교구원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서, 먼저 복음으로 개개인의 전인격적인 변화(회개와 믿음의 중생, 칭의)가 요구되며, 이와 같이 성령에 의한 전인적인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곧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인격적으로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세계의 주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약속들의 지속적인 배움을 통하여, 이웃의 사회문제와 자연생태계의 위기와 관련하여 요구되는 복음의 사회윤리적인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는 위치에까지 나아가야 되는 것이다.

역시 기독교구원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하나님의 구원인 것이다. 그러한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기인된 것으로, 먼저 인간 개개인을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온전히 구원되게 하려는 전우주적인 구원 계획과도 맞물린 것으로 이해된다(요3:16-17). 이러한 구원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그의 통치를 드러내는 창조세계의 회복과도 깊이 연관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창조세계의 회복과 관련된 것을 성경은 실제로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그것은 ‘만유의 회복’이란 언어로 표현되었다(행3:21, 고전15:25-28,계20:5-6). 이러한 만유회복의 주인공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이다(엡1:10).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화해하며, 그를 위하여 모든 만물이 창조되며, 하나님과 만물의 화해가 또한 이루어지는 것이다(골1:20).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은 개개인의 전인구원을 통하여 천지만물의 회복에 그 목표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되며, 또한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죄인이 하나님과 개별적으로 화해되며, 또한 하나님과 만물과의 화해와 회복이 전 우주적으로 이루어짐을 알게 된다(고후5:17-20). 그 모든 일들은 인간의 능력에만 의존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인 성령에 의한 새 창조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루어질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약속되기도 하였다(계21:1-7). 그리고 ‘만물의 회복’은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와 함께 우리에게서 일어나야 할 하나님의 구원의 총체적인 일이며, 땅에서 의와 평화의 실현에 인간의 동역을 필요로 하는 세상의 모든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전3:6).

생각하면, ‘만유의 회복’과 관련하여 이해된 전인구원은 먼저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전인구원의 소식을 알리는 복음전파(전도)에서 일어나며, 타락한 인간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되돌아오며, 인간이 만든 모든 사회적인 조직들이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와 진리의 영향으로 변화되어 바른 질서 가운데서 운행되며, 자연생태계까지도 인간의 무질서한 착취와 남용의 시달림에서 올바른 관리와 보호로 구원받는 환경으로 회복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만물의 회복’은 역시 다양한 차원에서 구체적인 사건들의 변화로 일어나는데, 먼저는 인격적인 차원에서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하나님 자녀의 회복이 이루어지며, 비인격적인 사람이 회개하여 인격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성을 드러내는 전인구원의 새 창조가 나타나며, 더 넓게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노동현장에서 노동착취, 차별과 소외, 정치적인 독재, 갑질의 권위주의와 횡포, 사회적인 불의와 부패, 불합리한 관행,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훼손된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생명의 권리가 회복되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또한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인종과 종교와 국가 간의 테러와 전쟁,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횡포, 인종주의적인 차별, 경제적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적인 통치로 인하여 파괴된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권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생태학적인 차원에서 인간존재의 회복은 인간의 자연성의 회복을 비롯하여, 인간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의 회복이 포함된다고 본다.(김균진, 기독교신학 3권 337). 그리고 ‘만유의 회복’은 지금도 이 땅에서 성령으로 일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기도 가운데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전인구원을 경험한자들의 책임적인 창조세계의 한복판에서의 직업 활동을 통하여, 모든 삶의 영역에서 발생되는 인간의 잘못된 사고와 욕망과 자유의지의 남용과 관련된 불의하고 비평화적인 모든 일들을 뉘우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환경으로 변화되도록, 그 개선과 개혁에 능동적으로 일하는 적극적인 기독인의 활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본다.

물론 여기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전인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의 사람이 되는 일은 성령의 독자적인 은혜이지만, 창조세계의 회복과 관련된 이웃과 자연생태계의 문제들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은 신인협동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일인 것이다(고전3:5- 9).

지금까지 우리 한국교회는 이러한 전인구원적이며,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기독교신앙의 사회윤리적인 책임을 포함한 총체적인 구원 이해를 우리의 성장세대와 평신도들에게 잘 깨우쳐 주지 못했다고 본다. 특히 보수적인 한국교회들이 그러하였던 것이다.

영혼구원을 목표한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강조하고, 경건의 윤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이웃과 자연생태계 문제들에서 짊어져야 할 복음의 사회윤리적인 책임이 얼마나 큰지를 인식시켜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기독인들의 삶은 매우 인색하고 이기적이며 자기 영혼구원만 생각하는, 마치 한 달란트 받은 종들처럼 생활하는 모습이 되었다고 본다. 필자의 판단이 오해이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목회자들의 교회사역도 대부분은 영혼구원으로 이해하여 교회의 수적 성장에만 매달렸던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결과가 지금 한국교회와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이 사회로부터 불신 받는 모습이며, 오늘날 복음 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 한국교회의 위기로 판단된다. 부끄럽지만, 개인과 이웃과 사회전체를 구원해야 하는 복음전도의 전인구원적인 사명은 망각한 채, 기독인의 삶의 모습은 전혀 믿음 없는 사람들처럼, 불신자들과 똑같이 살아온 참으로 세속화된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음을 깊이 뉘우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교회는 전인구원의 새로운 신학적인 이해에 따라, 윤리적인 복음의 사회적인 책임을 전인격적으로 응답하는 기독교의 살아 있는 구원신앙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이요, 교회의 질적인 성장과 부흥을 새롭게 이끌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어쨌든 기독교의 구원은 영혼구원보다는 전인구원으로 더 잘 이해되기를 바라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야 하는 전인교육적인 과제와 연결된 일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더 열심히, 더욱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전인구원의 교육목회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정일웅 교수 /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