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오피니언

[연재] 전인구원신학과 전인교육목회 ②

 

전인구원신앙과 믿음, 소망, 사랑과의 연계성

사도바울의 계시증언에 따르면,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다고 하였고,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하였다(고전13:13).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약속 받은 자들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기독교신앙,
즉 구원신앙의 참된 모습이며, 생생하게 활동하는 살아 있는 참된 구원신앙의 모습인 것이다.

기독교의 전인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구원계시에 대한 인격적인 반응으로서, 언제나 믿음, 소망, 사랑으로 응답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구원의 은혜를 경험(받은)한 자의 실제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인구원의 신학적인 근본토대는 하나님의 구원계시이며, 그 계시에 반응하는 실제적인 모습이 믿음, 소망, 사랑인 것이다. 그러한 모습이 전인격적으로 반응해야 할 기독교신앙의 본질이다. 그래서 전인구원의 실제적인 모습은 언제나 믿음, 소망, 사랑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도바울의 계시증언에 따르면,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다고 하였고,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하였다(고전13:13).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약속 받은 자들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기독교신앙, 즉 구원신앙의 참된 모습이며, 생생하게 활동하는 살아 있는 참된 구원신앙의 모습인 것이다. 즉 전인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된 자들의 살아 있는 신앙적인 모습, 그것은 믿음. 소망, 사랑의 3가지 모습이란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전인구원적인 신앙의 실제적인 모습을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소망의 인내”라는 3가지로 표현하면서, 하나님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증거이며, 또한 택함 받은 증거라는 사실도 밝혀 주었다(살전1:2-4).

역시 사도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이 전인구원계시에 대한 본질적인 반응의 모습으로서, 교회생활을 통하여 어떻게 성도 간에 서로 영향을 미치는 실제적인 관계의 모습이어야 할지를 다음과 같은 말로 증언하였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히10:22-25). 이것이 교회공동생활의 실제적인 신앙의 모습이며, 또한 전인교육목회의 목표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을 인간됨의 교육목회적인 사역과제로 제기한 역사적인 인물은 역시 17세기 유럽의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J.A.Comenius:1592-1670)이다. 그는 이 세 가지를 기독교종교(신앙)의 본질(Essentialia)로 이해하였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루터보다 100년 전, 유럽에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보헤미아의 종교개혁자 요한 후스(J.Hus)의 후예들인 “형제연합교회”(Unitas fratrum)의 구원신학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후에 코메니우스에게서 교육신학사상의 핵심적인 주제가 된다. 그의 유명한 책, ‘대교수학’(Didactica magna)에서 모든 학교에서 사용해야 할 성경교육과 관련하여 그는 믿음, 소망, 사랑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해준다. “성경에서 배운 모든 것은 믿음, 소망, 사랑에 관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3가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의 말씀 가운데서 계시하신 것이 참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향하여 노력해야하는 주된 목표들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우리가 알게 되도록 그가 밝혀주며, 다른 것들은 우리가 행하도록 책임을 일깨우며, 그는 다시 다른 것들을 현세와 미래의 삶에서 그의 자비가운데서 기다리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전체는 이 세 가지 중, 그 하나와 관계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이와 같이 그것을 잘 이해하는 것, 즉 그들이 신적인 요구들을 이성으로 명심하게 되도록 가르쳐야할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Didactica XXIV,21, 1957,230).

코메니우스는 역시 이러한 믿음. 소망, 사랑을 먼저 구약성경에서 아브라함에게 일러준 하나님의 말씀(창17:1,15:1)에서 발견한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믿음), “내 앞에서 변화하고 경건하라(행하여 완전하라)”(사랑), “나는 너의 방패가 되며,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소망)고 한 말씀입니다. 첫째, 전적으로 믿음에 근거하여 나(하나님)를 믿으라는 것이며, 둘째, 나(하나님)를 사랑하고 나(하나님)에게 순종하라는 말로, 전적인 사랑을 요구한 것이며, 셋째, 현세와 영원에서 모든 자비를 나(하나님)에게 기대하라, 이것들에 전적인 희망을 가지라는 것으로, 믿음, 소망, 사랑 3가지를 계시한 것이다.

역시 코메니우스는 믿음, 소망, 사랑이 신약성경에 나타난 복음의 구원계시와도 연관된 것임을 또한 밝혀 주었다. 그것은 새 언약의 창초자이며,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전인구원신앙의 실제적인 모습임을 강조한 것이다. 요14장에 근거하여, 1절에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믿음), 15절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사랑), 3절에서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에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소망)고 한 말씀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마28:19절 이하의 말씀을 근거로 코메니우스는 예수님의 부탁대로 제자(사도)들이 그것을 잘 수행하였고, 또한 사도바울 역시, 주님이 분부한 말씀을 열심히 수행한 것으로 이해하였다(고전13:13,엡1:15.8,골1:4-5,벧전1:3–9,행24:14-16).

코메니우스는 역시 어거스틴이 그의 소책자 엔키리디온(en chiridion)에서 밝혀놓은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을 중요한 원천으로 삼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를 구별하는 일에 아주 보편적이며, 본질적인 일로 여겼다. 어거스틴은 믿음, 소망, 사랑을 다만 종교적인 삶에서 얻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기독교적인 가르침의 중심점으로 삼았고, 지금 영혼이 사랑을 통하여 영향을 받아, 생겨나는 믿음으로 충만해 질 때, 거룩하고 완전한 영혼들에게서 분명해질 그곳으로, 그 영혼은 선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며, 그것은 말하자면, 무한한 아름다움으로 최고의 행복인 그곳(하나님)을 향하게 되는 것이며, 그 일을 이제 사람들은 믿음으로 시작하며, 그 완성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하나님을 보게 되는 일로 이해하였다(고전13: 12). 그것이 총체적인 구원신앙의 핵심으로, 믿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들에 관계된 것이며, 소망은 다만 선한 것과 미래의 것에 관계된 것이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믿음은 소망과 구분되어야 할 것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그리고 소망이 믿음 없이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역시 사랑은 소망 없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역시 이 양자(사랑과 소망)는 믿음 없이 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어거스틴 이래로 교회역사에서 믿음, 소망, 사랑은 요리문답교육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을 잘아려진 일이다. 그리고 새 신자들의 세례준비교육에서, 그리고 기존신자들의 신앙을 재정립하는 일에서, 믿음은 사도신경으로, 소망은 주기도문으로, 사랑은 십계명으로 연결하여 기독교신앙의 토대를 깨우치는 내용으로 삼았던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 모두는 이러한 가르침의 전통을 충실하게 따랐다. 코메니우스는 믿음, 소망, 사랑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3가지 띠와 같은 것임을 또한 밝혀주었다. 그는 계속해서 골1:4절 이하, 살전1:3-4절, 살전5:8절, 살후1:3,행24: 14-16, 요한1서3:23-24, 히11:6 등의 성경말씀에서 믿음, 소망, 사랑과 관계된 전인구원의 진보(성장/성숙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구원신앙의 가르침에서 믿음, 소망, 사랑이 충만하고, 정돈되고, 참된 빛을 발하게 되도록 성도들을 훈련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인구원신앙이 반응해야 하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하나님 안에서 그것들의 근원(근거)을 가지며, 인간은 그 근원에 상응하는 모습으로, 인격적인 신앙으로서 믿음, 소망, 사랑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은 서로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분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시다. 우리는 그를 섬겨야 하는 일꾼들이다. 그분은 아버지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인 것이다.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언제나 신실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믿음 안에서 섬기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우리는 믿음 안에서만 하나님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그를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가 우리를 알고, 사랑하며, 우리를 기쁨으로 신뢰해 주는 것처럼, 그렇게 소망가운데서 우리는 그를 신뢰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 소망, 사랑으로 3가지 하나님말씀의 가장 내적이며, 성경의 핵심적인 계시에 응답하는 전인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삶(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믿음 안에서 수용하는 하나님의 계시들(믿음), 순종으로 성취하는 하나님의 계명들, 그리고 신적인 소망을 신뢰하는 하나님의 언약들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믿음은 역시 사람들을 모든 과거적인 것들과 연결시키는 일이며, 사랑은 현재적인 것들과 연결하는 일이며, 소망은 미래적인 것들과 연결하는 일들이다. 생각하면 믿음은 정신의 조명이며, 사랑은 마음의 헌신이며, 소망은 영혼의 청결함인 것이다. 3가지 숭고한 덕행들 가운데서 광채 나는 사슬인 믿음, 소망, 사랑은 종교(신앙)의 완성을 성립시킨다고 생각한다.

믿음, 소망, 사랑이 완전하게 정돈되고, 참이 될 때, 역시 인간은 그리스도의 형상에 적합하게 모든 것이 회복되고, 완성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숭고한 신앙은 아브라함처럼, 이성으로 불가능한 것을 믿는 것이며, 숭고한 사랑은 형제들을 위한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그리스도와 모세와 바울에게서 그들의 모범을 발견하게 되며, 숭고한 소망은 다니엘의 3친구인 청년들(메삭, 사드락, 아베늑고)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은 살아 있는 기독교의 전인구원의 산 신앙의 모습이며, 하나님과 연합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은 그와 모든 권속들을 품어주시며, 하나님은 최고의 선으로 매달리는 불타는 사랑으로, 언제나 (생사 간에, 나쁜 때나 좋은 때나 동일하게)그의 좋은 것을 향유하며 멸망 가운데서도 지키시는 가장 달콤한 소망으로 전체적인 신앙의 내용을 형성하게 해 주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와 같이 믿음, 소망, 사랑의 신학은 전인구원계시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반응하며, 확인해야하는 구체적인 기독신앙인의 삶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백성 된 모습이며, 예수제자의 모습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복음전도와 목회사역은 바로 이러한 전인구원신학에 근거하여 믿음, 소망, 사랑의 산 신앙을 깨우치는 사역으로 전개되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전인교육목회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 정일웅 교수 /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