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상담실 포커스

[이단 상담실] 한국교회의 이단연구 제대로 합시다.

한때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세상 세태를 조소하는 말이 회자 된 적이 있는데,
현시점에서 한국교회가 적용하는 이단에 대한 잣대의 수준이
이정도가 아닌가 싶다.
여기에는 물론 특정 교단의 정치력과세력을 앞세운 기득권적인 요인들이
작용되었었음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

너무도 헷갈리는 이단 정죄

각 교단의 이단사이비연구 보고서를 보면 교리적인 이유를 비롯한 이런저런 이유로 100여개에 가까운 단체나 인사에 대해 이단규정 및 집회참여, 불 건전성 교류금지 등 한마디로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함께 해서는 안 될 위험한 것으로 낙인을 찍었다.

그중에는 신천지나 통일교, 안상홍증인회 등 정말로 반기독교적이요, 반사회적인 집단들이 있어 이 규정에 대해 수긍이 충분히 되나 의외로 많은 단체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상야릇한 잣대로 잰 결정들도 있다. 이 같은 결정에 주 초를 놓은 사람들 중에는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현재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사들도 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연구는 물론 전문 지식이 없는 잣대를 가지고 휘두른 흔적들이 보인다.

그들의 연구의 부실함으로 빗어진, 이상한 잣대로의 정죄된 단체들보다 오히려 더 불건전한 행태들을 보이고 있는 교단 산하 지 교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없는 상황이다. 제 식구 감싸기는 여기서도 통하는 모양이다. 그런 식으로 꼬투리 잡고 이단으로 정죄하자면 솔직히 말해서 한국교회의 목사들의 수많은 설교 가운데 당당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묻고 싶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러한 규정(고무줄 잣대)을 갖고 일반 성도들에게는, 해당 단체에 가까이하지 말라고 설명하기는 매우 애매하고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강단에서 말하는 신앙의 형태(설교등)와 이 이단 규정의 잣대가 너무나도 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때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세상 세태를 조소하는 말이 회자 된 적이 있는데, 현시점에서 한국교회가 적용하는 이단에 대한 잣대의 수준이 이정도가 아닌가 싶다. 여기에는 물론 특정 교단의 정치력과 세력을 앞세운 기득권적인 요인들이 작용되었었음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

이단에 정통하다는 어느 목회자는 ‘한번 이단은 영원한 이단’라고 피력했는데 이에 반하여 또, 어떤 교단에서는 특정 단체에 대해 이단 규정하고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단 해지하는 일들이 왕왕 있다. 이런 경우 그 목회자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교단의 결정이 그른 것인지 아리송할 따름이다. 고무줄식 이단 감별법이 아닐 수가 없다.

몇해전 류광수 목사의 다락방과 박윤식 목사의 평강제일교회에 대한 이단해지로 한국교회가 들썩였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논란의 여운이 한국교회에 남아있지만 그것은 해지한 기관이나 해지된 당사자들의 기만에 가까운 일 처리의 미흡함 때문이었지,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에 대해 새로이 접근하고 다시 서로 연구, 논의하는 것 자체는 매우 발전적이고 고무적인일이 아닐 수 없다.

한때 모 교단에서 레마선교회를 비롯한 8개 단체의 이단규정 해지를 놓고 자기들끼리 갑론을박하다 한국교회를 혼란케 한 일이 있다. 이미 한국교회 유수의 교단에 소속되어 지도를 받고 있는 단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우습지만, 먼저 이 교단이 자신들의 자유로운 신학해석과 반기독교적인 행태에 대해 정작 문제 삼은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실소를 금 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최근 일련의 한국교회의 이단관련 태도에 대해 도무지 누구의 주장과 무엇을 따라야 할지 헛갈린다고 한다. 풍성한교회의 두날개, 알파코스, G12 등의 프로그램과 인터콥 선교회와 신사도운동 등 정말 교단마다 입장이 제각각이니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해당단체의 주장과 입장을 묻기도 하고 이것을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분별 차원에서 보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에 탐욕과 기득권, 이기주의에 가득한 몇 몇 인사들은 편협한 사고를 갖고 자신들이 못 하는 것을 보도해 주는데 대한 이상한 굴레도 씌운다. 바로 ‘이단옹호언론’이라는 해괴한 굴레다.

차라리 세상 언론처럼 ‘성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좋으련만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면 창조적이지 못하고 특권적이지 못하다고 여겨서인지 아무튼 한국교회에서는 이단단체에 대해 비판하는 글 외에도 저들의 소식이나 주장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일간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북한의 김정은 동향을 기사화했다고 해서 종북 언론이라고 칭한다면 아마도 세상에서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이 조롱하고 비웃을 행태들을 특정 교단에서는 자행한다.

교계 언론들 가운데도 일부는 마치 자신들 신앙의 순결성인양 이에 대한 취재와 보도를 아예 꺼린다. 이단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면 그것은 어느 교인이 이탈했다느니, 가정이 파괴되었다느니 하는 사회일탈적인 것만 주로 다루며 다루려고한다. 그러나 요즘 사회일탈적인 단체가 자신을 하나님처럼 신격화하는 사악한 집단 한둘을 빼고 어디 있겠는가.

제대로 된 실질적인 조사와 연구, 정보 없는 이단 정죄

이러한 행태 때문에 이단에 대한 체감적인 실질적 정보가 어두워 정작 이단에 대해 말하라 하면 그저 몇 십 년 전 자료를 들먹이다 낭패를 보는 것이 한국교회의 이단에 대처하는 암울한 현실이기도 하다.

하기야 모 교단의 목회자와 한 신도는 컴퓨터 앞에서 수집한 자료들로 이단에 대한 모든 것을 습득한 듯한 착각과 환상에 사로잡혀 조금만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다르다 싶으면 이단이니 사이비니 정죄하고 목소리를 높이니 지목된 단체와 교인들은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길거리로 뛰쳐나오기까지 했겠는가. 정작, 자신들은 사소한 것에도 손해 보게 되면 고소 고발을 일삼으면서 말이다.

바른 행동은 바른 지식에서 나오고, 바른 지식은 바른 정보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바른 정보는 그저 인터넷 탐색이나 기사 검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쳐 보기도하고 만져보고 논쟁하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얻은 정보라야 비로소 연구할 수 있는 가치와 근거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직접(현장)적인 조사와 취재형식으로 이루어진 정보라야 연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그 결과물이 신뢰할 만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자! 그러면 한국교회의 이단연구는 과연 어디까지 와 있는 가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행여 이렇게들 하다가는 자신들이 여지껏 외쳤던 권위와 기득권에 혹, 손상이 갈까봐, 혹은 문제시될 단체가 없어지거나 그래서 우리교회 교인들이 행여나 그곳에 심취할까봐 겁이 나서, 대원군의 쇄국정책처럼 총 회원과 교회구성원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에 마구잡이식 이단 규정과 해지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복음 수호와 교회와 성도 보호는 물론 뒷전이다. 한걸음 깊게 살펴보면 구린내가 진동한다. 예전에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양 기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에서는 ‘이단의 규정과 해지는 소속교단에 그 권한이 있다’고 공표한 적이 있다.

언뜻 들으면 상당히 옳은 주장 같다. 교단의 교리와 주장이 서로 다르므로 섣부르게 남의 교단 소속의 지교회 문제를 가지고 이단이니 삼단이니 판단하고 공표할 일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 교단에서 이단이라고 하면 이단이지 무슨 말이 많냐”와 함께 “우리가 이단이 아니라면 아니지 무슨 말이 많냐”는 식의 상당히 권위적이고 교단의 이기주의에 입각한 추태에 가까운 교권 주의적 행패(?)를 일삼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정작 연구하고 대응해야할 신천지나 안상홍 하나님의교회와 같은 지극히 사교(私敎)적인 반기독교집단에 대해서는 실효성 없는 원론적인 답변만 앵무새처럼 되 뇌이고 있다.

복음을 전파하는 목적은 두말의 여지없이 영혼 구원에 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희생시키셨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기독교의 어느 교파이든 교단이든 이 목적이 다를 수는 없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나 방법에서는 얼마든지 다를 수가 있다. 반면에 이단, 사교 집단은 복음에 입각한 영혼 구원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단의 탐욕을 위해 세를 불리기에만 매달린다. 즉, 우리와 결이 다른, 분명히 틀린 것이다.

이단을 연구하거나 이단에 대하여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정말 심사숙고 하여 잘 구분해야 한다. ‘땅에서는 칼빈주의냐, 알미니안 주의냐 논쟁을 하며 싸우지만 정작 천국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들어와 있다’라는 어느 신학자가 말한 예화처럼 그러한 면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못하고, 합력과 야합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는 사랑과 욕정도 구별 못할 것이다. 그것은 탐욕으로 그 마음이 가득 찼기 때문일 것이다. 교계에 익히 알려진 어느 이단연구가는 한 언론의 기고에서 “한국교회가 이단연구에 좀 더 사랑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새삼 기억난다.

제발 앞서 밝힌 대로 반 기독교적, 반 사회적 행태가 아니라면 어느 단체 누가 되었든, 신뢰할 만한 소속 교단에서 충실한 조사와 연구를 통하여 주 은혜가운데 하나가 되고자 하는 노력과 거룩한 열정의 행보가 있다면, 긍휼함과 기도로 지켜보는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

또한 논란이 되더라도 성경과 복음에서 일탈하고, 삶에서도 일탈하고 있는 사이비적 집단이나 성경이 말하는 명명백백한 이단 단체가 아니라면, 그들이 외치는 소리도 귀담아 듣고 이에 대해 명확한 근거와 함께 연구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모두가 진정 주님 안에서 하나 되는 놀라운 회복의 역사들이 한국교회에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심우영 목사
*종교문제 대책 전략연구소소장
*크리스천언론인협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