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커버스토리

[커버스토리] 성탄과 십자가 그리고 복음, 사랑의교회 이천식 목사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는 성탄절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죄인들을 향하신 십자가의 생명을 되새긴다.

아기예수의 탄생과 십자가의 생명

‘십자가,’ 생각 할수록 참으로 뭉클하고 가슴시린 이름이다. 비 신앙인들이 보기에는 그저 기독교를 지칭하는 하나의 상징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생명이자 구원이요 전부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복되는 지루한 삶 속에서 흐려진 믿음의 초심 앞에,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다시금 헤이해진 신앙의 고삐를 바로 잡는다. 십자가는 우리 믿음의 시작이자, 과정이며, 마지막 종착점이다.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악에 허우적대던 인간과 암흑으로 뒤덮였던 이 땅이 구원받게 된 놀라운 역사의 시작은 바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있다. 그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 땅에 대한 회복이자, 인간을 향한 끝없는 사랑을 알리는 구속사적 사건이다. 그 분은 이 땅에 내려진 한 줄기 빛이자 생명이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더욱 눈부신 법. 그의 탄생은 죽음으로 가득한 이 땅을 희망 가득한 생명으로 물들였다.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는 성탄절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죄인들을 향하신 십자가의 생명을 되새긴다. 예수님의 탄생이 이 땅에 희망을 주신 것처럼, 생명이 가득한 십자가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유일한 구원으로 빛나고 있다.

전도자의 삶 택한 이천식 목사

이천식 목사에 있어 전도는 삶의 전부다. 어린 시절 예수님을 영접한 뒤로, 단 하루도 전도를 쉬어본 적이 없고, 복음을 외치지 않은 적이 없다. 물론 누군가 시킨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그 자체로 생명이며, 세상을 변화시킴을 믿기에, 결코 이를 멈출 수가 없었을 뿐이다. 경북 울진의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이 목사는 고등학생 시절, 서울로 전학 오며, 본격적인 전도여정에 나선다.

그는 당시 출석하던 원동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린 후, 매번 2시간 동안 준비된 전도지와 책자를 들고, 사람들이 붐비는 지역을 찾아다녔다. 이 목사는 “누구도 시키지 않고, 누구에게 드러내고자 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주님이 명령하셨고, 성령이 인도하셨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전도를 마친 후에는 다시 교회로 돌아와, 주일학교 교육 등 오후 프로그램을 함께한다.

녹초가 된 몸으로 그렇게 12시가 돼서야 교회를 나섰지만, 단 한번도 이를 포기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이 볼 때는 참으로 무모하리만큼 혼자 전도지를 들고, 세상에 나섰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함께하심은 늘 내게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아무도 복음에 관심을 보일 것 같지 않던 냉랭한 길거리 한켠에는 주님의 위로가 필요한 어린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전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안양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전도사가 된 이 목사는 할렐루야 전도단에 들어가, 체계적인 기도훈련과 전도훈련을 받으며 크게 성장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전도방법을 연구 개발케 된다. 그 결과 그는 일상에서의 전도는 물론이고, 학업을 쉬는 방학기간이며 전국방방 곳곳을 도는 전도투어로 전도단을 이끌게 된다. 당시 그가 뿌린 전도지는 한 해에만 무려 15만장에 이른다.

오지 전도의 시작

그가 전도를 체계화 한 것은 1988년 10월. 서울 응암동에 사랑의교회를 개척하면서다. 교회 개척 이후 처음 맞이한 여름, 그는 전교인을 이끌고 경북 울진으로 여름수양회를 떠나게 되는데, 그는 그 곳에서 전도 여정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저 새롭게 결성된 교회의 단합과 신앙 성숙을 위해 찾은 울진의 작은 시골이었는데, 도착한 순간 그는 그 동네에 단 한 번도 복음이 들어온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후 급작스레 일정을 변경해 전교인 수양회가 아닌 지역 집회를 치른다.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 마을잔치를 열고, 틈틈이 성경학교를 진행했다.

“교회를 찾아볼 수 없던 동네에 처음 찬양이 울렸던 순간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곳으로 우리교회를 보내신 이유가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 목사는 그 마을과 인연을 맺고, 매년 교회의 여름과 겨울 수양회를 그 곳에서 진행했다. 사실 수양회를 핑계 삼아 마을 사람들을 위한 섬김을 하고자 한 것인데, 그러한 그의 노력은 결국 열매를 맺어 3년이 되던 해 그 마을에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됐다. 이 목사도, 그를 믿고 따라준 성도들도 참으로 대단한 부분이다.

매해 1,000여명의 결신자 배출

한 마을 전체를 복음화 한 그 당시의 사건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이 목사는 아직 우리나라 곳곳에 예수님을 존재를 모르는 ‘복음의 오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본격적인 오지 전도에 나선다. 처음 당도한 경북 울진을 중심으로 점차 그 범위를 넓혀 강원도 삼척까지 전도지를 넓혀 나갔다. 그리고 한 번 인연을 닿은 마을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마을 사람들을 위한 체계적인 양육을 펼쳤다.

또한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할 단체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직접 나돌섬선교회를 창립해 현재까지 농어촌을 위한 전도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다. 나돌섬선교회는 경북, 강원도 지역의 12개 마을에 대한 양육을 맡아 계속적인 복음 전파에 나서고 있으며, 곳곳에서 교회가 세워지는 기적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매년 여름을 기점으로 시행하는 ‘농어촌 전도’는 현재 31회째에 접어들고 있으며, 매년 1000~1600명의 결신자가 배출되는 그야말로 기적의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러한 엄청난 결과는 그의 전도 열정과 그가 오랜 시간 전도를 진행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는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구리 전도법’을 개발해 전국교회에 이를 보급하고 있다.

“개구리 전도법은 개구리의 생태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개구리 한 마리가 봄에 ‘개굴’하고 깨어나면, 나머지가 그 소리에 연쇄적으로 깨어나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한 사람이 깨어나면, 그에 자극받아 전 성도들이 함께 깨어납니다. 물론 그 첫 번째 깨어나는 개구리는 바로 목사 자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그의 전도 열정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꽃을 피웠다. 특히 캄보디아의 구치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선교사역은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그와 동역자들은 구치소에 한글학교를 세워, 수감자들에 한국어와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인들에게 한국은 동경의 대상이며, 한글을 배우는 것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무 십자가’와의 인연

그를 유명케 한 ‘나무 십자가’는 개척교회 시절 처음 접했다. 심방을 가던 중 길가에 떨어진 향나무 한 조각이 그를 오늘날 ‘나무 십자가’작가로 만들어냈다. 그의 손재주는 이미 어렸을 적 두각을 나타냈다. 목공일을 하시던 삼촌의 일터에서 나무를 만지며, 나무와 친근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신학을 하기로 마음먹은 뒤로는 조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오직 전도와 공부에 매진하다, 지난 5년 전 사순절 기간에 다시 한 번 십자가를 만들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십자가를 만드는 작업은 단순히 행위적 노동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십자가는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생명을 담아 내야 하기에 내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주로 사순절 기간에 기도를 통해 작품을 구상하여, 제작에 들어가며, 이 외의 기간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작품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의 ‘나무 십자가’는 모두가 제각각이지만, 그 속에는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들은 하나의 스토리를 형성해 전시회를 찾는 이로 하여금 많은 흥미를 유발한다. 내년 사순절 기간에 또 한 번의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천식 목사는 특별히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을 그 재료로 쓸 예정이다.

“지난 태풍 링링으로 많은 나무 작대기들이 나왔습니다. 이번 테마는 태풍을 만난 십자가입니다. 비록 태풍은 우리들에 큰 피해를 주고 떠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무 십자가는 태풍을 이겨낸 생명과 희망을 노래할 것입니다”

‘나무 십자가’에 녹아든 전도의 열정

이천식 목사의 또 다른 이름과도 같은 ‘나무 십자가’는 사실 그의 평생에 걸친 전도 여정의 도구였다. 사람들에 복음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방편을 찾고자 고민하던 찰나에 우연히 접한 것이 바로 나무였던 것이다. 지독하리만큼 치열한 그의 전도에 대한 열정과 고민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나무 십자가’의 존재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의 ‘나무 십자가’는 참으로 오묘하다. 서로가 교차하는 단순한 나무 기둥일 뿐인데,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한켠에서 밀고 올라오는 뭉클한 감동을 준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작품성도 대단하지만, 아마도 그것만으로는 진솔한 감동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의 ‘나무 십자가’가 실로 대단한 것은 죽음 위에 생명을 불어넣는 십자가의 의미를 그대로 투영했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작품 제작을 위해 철저히 버려진 나무를 이용한다. 길가에서 썩어가는 나뭇가지나, 벌목현장에서 잘려나간 자투리들이 그의 주재료들이다. 물론 애초 멋들어지게 뻗은 나무들을 이용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작품을 만들겠다며 멀쩡한 나무를 자르거나 꺾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나무 작대기를 들고 이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그저 죽은 나무일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두 개를 들고 서로 교차하면 이를 십자가라고 부릅니다. 한낱 볼품없던 죽은 나무가 나의 작은 행동으로 인해 생명이 넘치는 십자가로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암흑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영생의 축복을 선사했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담긴 십자가는 죽음에 빠진 인간들에 완전한 생명을 부여했다. 이 목사는 나무 십자가를 통해 십자가에 담긴 생명을 표현하고 싶었다. 전도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으로 새 생명을 부여하는 귀중한 사명인 것처럼, 죽은 나무가 생명 가득한 십자가로 재탄생되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감동이 되는 것이다.

나무가 말해주는 인간의 삶

그는 여지껏 250여개가 넘는 작품을 만들어 냈지만, 그 중 똑같은 작품은 단 한 개도 없다. 인위적인 가공을 최대한 배제한 채, 태생 그대로의 모습을 작품에 활용하는 그의 신념에 의한 결과다. 그리고 그러한 개성은 우리 인간들의 삶과도 크게 맞닿아 있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똑같은 나무도 없습니다. 모든 나무를 작업할 때 각각의 모양에 맞는 도구가 필요하고, 기법이 필요합니다. 나무 십자가를 결코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는 것은 애초 재료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도해야 할 대상 중 똑같은 영혼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각각의 외모는 물론이고, 사는 환경, 살아온 과거, 신념 모두가 다릅니다. 그런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각각에 맞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아무런 기도와 고민 없이 무턱대고 들이대기만 한다고 해서 결코 결신이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작품에 녹아있는 진정한 목표는 오직 ‘전도’와 ‘선교’다.


이천식 목사는 안양대학교와 동대학원을 거쳐, 미국 인터내셔널 신대원을 졸업했다. 이어 미국 리폼드 신대원과 총신대학교에서 목회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군 선교에서 활발한 두각을 나타내 56사단사령부 향군종위원회 총위원장, 수도방위사령부 향군종위원회 총무 및 부회장을 역임했다. 대신총회 소속의 이천식 목사는 경인노회 노회장과 교역자 회장을 거쳐, 총회 부 회의록서기와 대신세계선교회 이사 및 부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파주시기독교총연합회 부회장, 파주시교회와시협의회 상임주회장, 파주경찰서 경목위원회, 탄현면교회연합회 회장 등, 다양한 지역 연합활동을 이끌었다. 이 외에도 ‘이천식 나무 십자가 이야기 개인전’을 4회에 걸쳐 진행했으며, 이천식 목사의 365일 Q.T 사역 대표도 맡아, 불특정 다수에 매일 아침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