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향기있는 만남

[향기있는 만남] 1.000년전 한반도에 꽃 피운 기독교 ‘경교’를 만나다.

사) 한국경교역사연구원 원장 이경운 목사

1000만 성도를 자랑하는 국내 1위 종교이자, 이슬람, 불교 등과 함께 세계 주류종교로 자리매김한 기독교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 조선 말기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에 의해 전파되어, 의료, 교육, 정치, 경제 발전에 토대가 되며, 암울한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었던 종교. 바로 우리가 아는 기독교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 상식과 달리 기독교의 첫 시작이 삼국시대였을 것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주장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경교’, 고대 중국 기독교로 알려진 바로 ‘경교’가 고대 한반도에서 매우 융성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에서는 경교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활발히 인정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경교에 대한 인식이 유독 미미하다. 하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평생을 경교 연구에 헌신하며, 기독교 역사 재정립에 힘쓰는 이가 있으니 바로 이경운 목사(대신총회 제33회 총회장)다.

한국 경교 연구의 선두 ‘이경운 목사’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사)한국경교역사연구원은 대한민국 경교 연구의 중심이다. 이곳을 세운 이경운 목사는 평생을 경교 연구에 헌신한 인물로, 한국교회에 실제적인 경교의 실체를 소개하고, 경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노력해왔다.

그의 경교에 대한 관심은 유별날 정도다. 한국교회에서 그 지도력을 인정받고, 목회 부흥을 이룬 그였지만, 원천적인 관심은 오직 경교에 있었다. 그가 경교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971년 신학교 3학년 시절로 교회사를 강연하던 교수님을 통해 경교의 존재를 알게 된 이 후, 경교에 빠져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본격적인 연구에 나선다.

그가 경교에 그토록 빠지게 된 이유는 바로 경교에 한국 기독교의 진짜 뿌리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게 잊혀진 역사를 새롭게 기억해 한반도의 진짜 역사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다.

이경운 목사는 “사실 내가 하는 연구를 그저 과거의 경교를 파헤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한국 기독교의 뿌리 찾기 운동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며, 반드시 밝혀져야 하는 역사다”라고 강조했다. 벌써 35년째 사비를 들여, 경교 관련 유물을 수집하고, 수차례의 학술행사를 열어 온 이 목사는 경교에 대한 홍보 뿐 아니라 오해를 바로 잡는데 총력하고 있다.

경교란 무엇인가?

흔히 중국 고대 기독교로 알려진 경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마리아의 신성을 부정했던 네스토리우스 학파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여러 기독교 학파 중 하나였던 네스토리우스 학파는 당시 예수님의 어머니였던 ‘마리아’의 존재를 두고 씨릴 학파와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다.

이 논쟁에서 네스토리우스 학파는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한, 인간이라고 주장한 반면, 씨릴 학파는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오늘날 기독교와 천주교 간의 교리 논쟁이 그대로 반영된 당시 사건에서 네스토리우스 학파는 씨릴 학파에 밀려, 자신의 교세를 점차 동쪽으로 이동시킨다. 이렇게 시리아에서 시작된 네스토리우스의 교회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까지 당도하게 된다.

그렇게 지금으로부터 1400여 전 당나라에 처음 건너 간 네스토리우스의 선교사는 아라본(알로펜) 선교사 등 총 21명으로, 오늘날 경교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당의 6대 황제였던 현종은 아라본 등이 전한 기독교에 대해 ‘크고 빛나는 종교’라는 뜻의 ‘경교’란 이름을 붙인다.

당나라의 황실을 지배한 경교의 복음

경교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당시 경교가 가졌던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과 지배력이었다. 오늘날 경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과거 중국 일부에 퍼졌던 미미한 종교라는 것과는 달리, 당나라 시절 경교는 평민과, 중인, 귀족은 물론이고, 황실에까지 깊이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이경운 목사는 “당의 2대 황제였던 태종의 사적을 보면, 황실이 기독교(경교)를 받아들여, 그 안에서 교리 교육을 행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당 황실이 황족들에게 기독교 교리교육을 했다는 것으로, 그 당시 경교의 위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당나라 시절 경교가 거의 국교 수준에 근접했다는 근거있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더구나 당의 절대 지배자였던 황제 태종이 앞장서 경교의 복음을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교회를 세웠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간 간과하고 있던 중국 기독교의 중요한 역사다.

당시 당 태종은 경교 전파 1년만에 ‘대진사’라는 교회를 세웠으며, 3년 만에 똑같은 교회를 두 곳이나 더 세우게 된다. 이를 두고 이 목사는 “대진사라는 명칭이 절의 이름처럼 느껴지지만, 당시 ‘사’라는 명칭이 불교에 한정된 것이 아닌 종교시설을 지칭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대진사는 분명한 교회이자, 중국 최초의 교회다”면서 “이를 불교의 절이나 혹은 불교와 기독교의 혼합종교로 이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경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아 태종의 사적에는 “방방곡곡에 교회가 세워져 나라가 태평했다”면서 나라와 부흥과 백성의 안정에 대한 공을 경교에 돌렸다.

경교는 당나라 시절 2대 태종을 거쳐 6대 현종에서 최전성기를 맞기도 하는 등, 꽤 오랜 시간 당나라의 중심 종교로 자리했지만, 종교 탄압이 극대화됐던 15대 무종을 거치며,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

‘경교’의 이단 논쟁 종결

사실 한국교회 대다수는 경교에 대해 이단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정보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경교의 토대가 된 네스토리우스 학파는 당시 ‘마리아’의 신성을 인정한 주류 교회들로부터 분명히 이단시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카톨릭이 아닌 기독교는 마리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네스토리우스 학파는 현 시대 기독교의 교리와 매우 유사하다.

이경운 목사는 “경교가 이단이라는 주장은, 고대 기독교적 관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독교를 마틴 루터 등의 종교개혁자들이 새롭게 개혁한 이후, 우리는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새로이 정립했다”면서 “만약 고대 기독교의 이단 정죄를 그대로 차용하고자 한다면, 마틴 루터나 칼빈 역시 그들에게 이단으로 정죄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 하듯 지난 1986년 카톨릭의 교황청과 정교회는 네스토리우스 학파와 경교에 대해 더 이상 이단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즉, 경교가 이단이라는 인식은 매우 잘못됐다는 것이다.

경교의 한반도 유입 가능성은?

그렇다면 당나라의 국교 수준에까지 근접했던 경교가 한반도에 유입됐을 가능성은 없을까? 사실 이경운 목사 등 국내 몇 되지 않는 고대 기독교 연구 학자들이 경교 연구에 뛰어든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 질문에서 기인한다.

당시 당나라는 한반도의 고구려, 신라, 백제 있어 대륙을 지배하는 대국으로, 문화와 물품 교역의 1순위였다. 특히 삼국시대 최후의 전쟁 당시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신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보여주듯 당나라와 매우 친밀한 관계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고려할 때, 수대에 걸쳐 당의 황실을 지배했던 경교가 한반도에 넘어왔을 가능성은 너무도 충분하다. 오히려 경교가 당나라 내에만 한정되었을 뿐 한반도로 유입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에 신빙성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결정적으로 경교의 흔적은 일본에서도 발견됐다. 이는 당시 일본의 주요 교역이 한반도와 이뤄졌다는 것을 감안할 때, 당나라의 경교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파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로, 일본에서 역시 경교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원대(元代) 경교 유물 81종

경교 관련 유물 다수 발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반 역사학계나 심지어 한국교회까지도 경교의 존재를 확실히 인정치 않고, 연구에 미적지근한 것은 경교가 언급된 과거의 문서, 사료가 없기 때문이다. 이경운 목사는 평생을 경교 연구에 매진하며, 결정적 증거가 될 사료를 찾는데 온 힘을 들였지만,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부분은 아직 찾지 못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이 목사는 불교 융성정책이 극대화된 시대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추측한다. 이 목사는 “삼국시대를 지나, 통일신라시대, 그리고 고려에 걸쳐 불교는 완전한 국교로 자리한다. 그렇기에 당시 나온 모든 역사서의 중심에는 불교가 있었으며, 불교사관을 기본으로 역사가 저술됐다”면서 “고려시대에 저술되어 삼국시대를 다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철저히 불교에 의한 역사서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불교에 대한 적극적인 융성과 철저한 단일정책 속에 경교의 흔적이 남아있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문서나 사료가 없을 뿐, 한반도에서 경교의 유물은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이경운 목사가 한반도 첫 기독교의 시작이 삼국시대 경교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이 목사는 “만약 경교가 전파되지 않았다면, 이 땅에 경교의 유물이 남아 있을 수 없다. 이미 곳곳에서 경교 십자가를 포함해 기독교를 상징하는 유물들이 상당히 발굴되고 있다”면서 “이는 결코 과거 이 땅 한반도에 기독교가 유입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을 일이다”고 전했다.

마리아를 형상화한 ‘경존상’

실제 이 목사가 수집한 유물들을 보면, 한 눈에 기독교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유물 곳곳에 경교 십자가라 불리는 정 십자가가 여실히 새겨 있고, 십자가를 가슴에 품은 과거의 조각상들은 과거 이 땅에 십자가가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케 해준다.

이 목사는 평생에 걸쳐, 기도하는 여인상, 경교 십자가, 수막새, 애석과 신석 등 많은 경교 관련 유물을 수집했지만, 그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경존상이다. 전체적으로 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존상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일반 불상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가슴과 머리에 십자가 장식이 있으며, 결정적으로 남성이 아닌 여성상을 하고 있다.

이 목사는 “경존상의 모습을 보면, 옷차림은 유교의 도포와 비슷하지만, 머리는 천주교의 미사포를 씌워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머리와 가슴에 십자가를 새기고 있다”면서 “아마도 마리아를 형상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사람들이 말로 전해들은 마리아의 모습을 익숙한 불상의 형태로 제작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좌. 대진 경교 중국비
우. 당대 경교 중국비 탁본으로 재현한 경교비. 기회가 되면 경교비 내용 전문을 게재할 계획이다.

중국 경교의 상징 ‘경교비’

중국 경교의 역사를 대표하는 유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경교비다. 경교 비는 당나라 전파 이후 각 시대마다 후손들에 의해 세워지게 됐는데,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대표적인 ‘경교비’라 하면 바로 청나라 시절 제작된 경교비다.

이와 관련해 현재 한반도에는 영국 동양학자 골든 여사가 북한 금강산에 세운 경교비와 우리나라에는 경기도 안성에 이인시 목사에 의해 세워진 경교비가 존재한다. 한국경교역사연구원의 앞뜰에도 경교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청나라가 아닌 당나라 때 제작된 경교비를 모태로 하고 있다. 이 목사는 해당 경교비를 중국 서안에 위치한 비림의 섬서성 박물관에서 발견하고, 직접 박물관장에게 의뢰해 탁본을 뜰 수 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목사는 중국 현지에서 탁본을 바탕으로 한 경교비를 직접 제작했으며, 이를 한국으로 들여와 연구원 앞마당에 전시하게 됐다. 이를 위해 소요된 비용만 총 2,000만원이 넘게 들었다. 이 목사가 경교비를 세우는데 유독 공을 들인 것은 경교비가 아시아에 기독교가 번성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가장 객관적 사료이기 때문이다. 이는 흔히 서양의 종교로 인식하고 있는 기독교가 결코 서양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나타내는 것으로, 세계 종교사의 커다란 반전을 제공한다.

이 목사는 “경교 연구의 핵심 중 하나는 기독교 연구의 관점을 서양 중심이 아닌 아시아 중심에서 풀어나간다는데 있다”면서 “분명 기독교가 서양을 중심으로 번성하고 발전한 것은 맞지만, 현 아시아의 기독교가 서양에 의한 일방적 선교에 의한 결과라는 것에는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가 들여온 경교비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단락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담겨있고, 두 번째는 중국 황제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육성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다. 마지막은 성령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나온다.

이경운 목사 “한국교회 함께 동참해달라”

이경운 목사는 한국교회가 이제라도 경교 연구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동참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경교가 한반도에 실존했다는 증거가 명확한 상황에 한국교회가 스스로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는 호소다. 이 목사는 “내가 처음 경교 연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경교에 대한 자료는 물론이고, 인식조차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야말로 황무지 그 자체였다”면서 “그에 비해 현재는 경교 연구에 상당한 진척을 이룬 상황이다. 해외 여러 기독교 연구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자료를 축적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의 연구가 언제 끝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나의 연구를 이어 한국 기독교 역사를 제대로 세워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면서 “모두가 관심을 갖고 함께 나서 준다면 분명 한국 경교의 실체를 밝혀 줄 수 있는 확실한 문서가 발견되리라 확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한국경교역사연구원을 개방해 언제든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도록 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목사는 “직접 눈으로 보고, 확신해야 한다. 현대적 편견이 아닌 과거의 눈으로 진실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면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 사) 한국경교역사연구원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무송리 347
■ 경교역사 바로알기 문의 및 한국경교역사박물관 관람신청(세미나 신청) ■ 원장 : 이경운 목사 010-9052-9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