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기고

[정성구 칼럼] 「표」도둑질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영국 청교도들의 숫자가 많았지만, 8년 후인 1628년에 미국으로 건너 온 화란 개혁주의자들의 수도 엇비슷했다. 청교도들은 메사츄스주에 터를 잡았지만, 화란 사람들은 오늘의 뉴욕에 터를 잡고 그곳을 뉴 암스텔담(New Amsterdam)이라고 명명했다. 이민 초기에는 각자 자기 언어와 문화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의회에서 영어를 국어로 쓸 것인가? 화란어를 국어로 쓸 것인가? 의 표 대결에서, 한「표」차로 영국과 스코틀렌드 계가 이겼다. 그래서 미국은 국어를 영어로 쓰기로 결정 되었다. 동시에 뉴 암스텔담이란 도시는 간판을 내리고, 뉴욕(New York) 즉 영국의 중세도시 York를 새로 건설 한다는 명분으로 뉴욕이 되었다. 그래서 뉴욕의 거리 이름은 아직도 거의 화란식으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 한 표 차이가 세상을 바꾸어 버렸다.
실은 17세기의 영국과 화란은 해양제국을 다투어 건설 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앙숙이었다. 심지어 영어의 모든 나쁜 말에는 앞에 꼭 더치(Dutch)자를 붙였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을 멸시하는 말에는 <조센징>을 부쳤듯이 말이다.

민주주의는 표를 먹고 살고, 표를 못 얻으면 개인도 정당도 망가지는 것이 역사였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가라도, 아무리 좋은 정책을 가진 정당이라 할지라도 표를 얻지 못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평소에도 <표갈이>에 정성을 다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인기전술을 쓰고, 위장전술을 사용하는가 하면, 거짓 공작을 하기도 한다. 표가 되면 국민에게 기만전술도 쓰고, 표가 된다면 멀쩡한 상대를 파렴치범으로 만들기도 한고, 표가 된다면 형편없는 놈팽이, 백수, 건달도 언론이 멋진 지도자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하려면 역시 <돈>이었다. 3•15부정선거 당시에는 고무신, 비누, 막걸리를 사용해서 가난한 국민들의 표를 샀는가 하면, 개표조작도 이루어졌다. 피아노 표, 올빼미 표 같은 아주 고전적 수법이 동원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4•19의거가 일어났고, 이승만 대통령은 자진 하야 했으며, 선거부정을 총괄하던 내무장관 최인규는 사형되었다. 그 후에도 정치에 「표 도둑질」은 끝나지 않았고, 다만 고도로 진화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선거에는 돈이 있으면 이기고, 돈이 없으면 지는 것이 공식이 되었다.

들리는 말로는 지난 4•15선거에도 <부정이 있었다>는 말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중요 T.V방송과 신문이 아무런 보도가 없으니, 부정선거가 사실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국민들로서는 고도화된 IT기술을 모르기 때문에, ‘설마 이렇게 밝은 세상에 부정선거가 있겠는가!’라고 상상을 못한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수습한다고 선거 몇 일 전부터 아동복지를 위한답시고 엄청난 돈을 뿌린 것 같은데, 이런 것도 모두 합리적 부정선거로 표를 매표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교회사의 위대한 ‘성 어거스틴’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부정한 법은 법이 아니다>, <정의가 없다면 권력이란 강도에 불과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4세기 때나 지금의 21세기 때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부정선거는 정치권에만 있는 것이 아닌 듯 싶다. 기업과 모든 이권 단체에서도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거기서도 고도의 정치적 술수와 돈이 움직이고 있다. 말하자면 오늘의 세상은 양심이나 진실보다, 권모술수의 달인이 출세하고, 권세를 잡고, 부를 누리고 있다. 말하자면 돈 놓고 돈 먹기 같은 야바위가 오늘의 세상이다. 물론 이런 모양새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남미나 아프리카에도 많다. 민주주의가 모든 제도 가운데 가장 좋은 제도인 것은 맞지만, 민주주의도 인간의 죄악 때문에 생겨난 것이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은 맞지만 민중의 표만 얻으면 모두가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중의 소리(Vox Populi)보다 하나님의 음성(Vox Dei)을 먼저 들어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하나님의 음성을 최고 가치로 생각한다는 교회들도, 총회장 선거나 감독 선거와 연합회장 선거에도 돈이 우선시 되고 있다. 오죽 했으면 어느 교단은 투표 대신에 제비 뽑기란 제도를 만들어서 금권선거를 막아보려고 했을까 싶다. 사실 제비 뽑기는 장로교회의 정치원리에 위배된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금권선거를 막아 보자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표를 얻기 위한 기술, 금권선거를 위한 방법은 끊임없이 진화되어왔다. 말하자면 정부가 하는 짓거리 처럼 합리적 논리적으로 돈을 뿌리고, 민심을 사는 방법이다. 예컨대 마음에 드는 어느 단체, 어느 기관에 후원명목으로 돈을 뿌리는 방법이다. 이는 불법은 아니지만 돈이 곧 진리가 되고, 돈이 곧 정의가 되고, 돈을 뿌려 당선되어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겨도 할 말이 없다.

정치하는 하는 사람들은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늘 표가 떠오른다. 자신을 위장하고 불법으로 돈줄을 만들어 이 세상에서 명예를 얻고, 영광, 존귀, 찬양을 다 받으려는 것이 일반 정치나 교회나 크게 다르지 않다.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을 쌓는 자들의 구호는 <우리 이름을 내자>였다. 우리 이름, 자신의 이름을 들어 내기 위해서, 지혜와 지식과 돈을 쏟아서 오늘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다.

모두가 대통령 되려 하고, 모두가 교황이 되려는 성직자들로 가득 차 있다. 합법적으로, 합리적으로「표」를 도둑질 해서 출세하고, 역사를 바꾸려는 사람들,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하는 인생들은 아마도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 땅에서 계속 있을 것이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